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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색이 분명한 영화를 만나는 것은 참 즐겁다. 언제부턴가 나는 CG를, 자동차를 로봇으로 일으켜 세우고, 거미줄을 내뿜는 뉴욕의 영웅이 타잔의 나무 넝쿨 타는 묘기를 부리며 빌딩 숲을 뛰노는 비현실적인 모습을 현실처럼 꾸미는 데만 사용하는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CG의 완성도라는 단어를 곧 '말도 안 되는 것을 얼마나 그럴싸하게 꾸미는가'로 받아들인다면 스피드 레이서는 최악에 가깝다. 거대한 화면 속에서 시종일관 살포하고 있는 비현실적인 색감들은 '지금 현재' 혹은 '가까운, 또는 먼 미래' 나 '만약 그러한 것이 있을 경우' 를 가정했다고 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황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 비현실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스피드 레이서가 가진 CG의 매력이다. 이 영화의 CG는 영화의 현실성을 살려주는 요소로 사용되진 않는다. 다만 화려한 원색의 배경과 네온사인들을 약 시속 4~500킬로 쯤 되는 속도로 지나쳐갈 때만 느낄 수 있는. 인간이 가진 원색적이기 그지없는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재료로써 사용된다. 압도적인 크기의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원색의 향연. 이 영화의 시각적 목표는 관객의 눈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터뜨려버리는' 것이다. 작품의 원색적인 모습은 내적인 부분에도 다시 한 번 등장한다. 레이싱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기호가 그대로 드러난 이름을 가진 주인공의 갈등은 바로 자신이 믿고 있는 레이싱을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데서 출발한다. 로얄튼이라는 거대 기업의 회장이 주인공에게 하는 조언을 요약하자면 '레이싱은 스포츠가 아닌 누가 이기고 질 것인지는 출발하기 전부터 정해져있는 산업이며 진정한 레이서가 되기 위해서는 이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 시스템에 깔려 압사하고 싶지 않다면, 이 룰을 인정하고 따르라.'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레이싱과 자신이 달리는 모습을 좋아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이 룰을 따르길 거부한다. 그러나 문제는 룰은 강제성을 가지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그 시스템의 룰을 따르길 거부하는 순간, 시스템은 순식간에 주인공을 무너뜨리기 위해 덮쳐온다. 반칙이나 다름없는 방해 행위들과 주인공을 향해 덮쳐오는 육체적인 위기는 바로 그 룰이 효율적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천신만고. 외부의 힘을 빌려 이 룰을 깨트리기 위해서 주인공은 몇 번의 곡예와도 같은 레이싱을 펼치고, 만화와도 같은 액션씬을 거친 끝에 승리를 이끌어 내었지만 외부의 힘을 빌려 내부의 시스템을 깨드리기 위한 시도는 오히려 룰이 어디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뿐이었다. '모든 승패는 정해져있다.'라는, 견고한 시스템이 작용하는 레이싱 세계의 룰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물론 존재한다. 모든 승패가 정해져있다면, 그 승리에 초대받지 않은 주인공이 승리를 해버리면 된다. 한 마디로 룰을 깨는 방법은 자신이 룰을 깨버리면 그만이라는 말이다. 영화의 내적 논리는 원색에 가까운 색감이나 원초적 상상력의 자극을 자극하는 외적 요소만큼 알기 쉽고 명확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현실적으로 견고한 시스템의 룰을 깬다는 것이 지극히 어렵고, 한 사람 뿐만이 아닌 수 백, 수천 명의 사람의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부조리한 룰을 깨어버리고자 욕망하는 인간의 원색적인 상상력 그 자체를 투사하는, 모든 면에서 선명하기 그지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룰은 언제나 그렇다. 룰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신이 직접 손을 들어 룰을 내려쳐 깨트리는 방법뿐이다. 이 방법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룰은 깨지지 않는다. 섣부른 패배주의에 빠진 레이서들이여. 여기 룰을 깨는 자가 왔다. 길을 비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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