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올바른 결과를 찾아내기란.
 미친 척하고 방방 뛰어다니는 이오리의 점프를 모두 대공기로 쳐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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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게임 센터에 갔다. 자주 들락거리는 게임 센터가 아니었는데 KOF가 있더라. 오랜만에 동전을 넣고 캐릭터를 고르는데 자신만만한 얼굴을 한 누군가가 옆자리에 앉아 동전을 넣었다. 흠, 이거 좀 무섭군요.
 내가 KOF를 못하는 탓도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상대방은 게임을 잘했다. 하긴, 동네에서 게임 센터 구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나 마찬가지가 된 요즘 세상에 아직도 진득하게 KOF를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못하는 편이 더 이상하리라. 상대방의 캐릭터는 이런저런 캐릭터가 계속해서 바뀌는 랜덤이었지만 유독 주력 캐릭터인 것 같은 이오리만은 고정 라인업으로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게임을 하는 내내 미친 놈처럼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는 이오리에게 당했다. 워낙 공중 기본기가 좋은 캐릭터인지라 그럭저럭 괜찮은 대공기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하는 동안 내내 구석에 몰려 가드만 하고 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다. 대공기를 한 번 질러봤으면 좋았을 것을.
 KOF라는 게임에서 대공기는 성공할 경우 이어지는 상대방의 공격 흐름을 끓고, 내 쪽으로 공격의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지만 실패할 경우 이어지는 상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한 번에 게임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위험성 때문에 좋은 성능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게임 센터 내에서 두 사람의 대전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갤러리들이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은 가만히 앉아 있는데 자기 혼자 무참히 대공기를 질러서 하늘 위로 날아가버리기라도 한다면 갤러리들 사이에서는 피식거리는 비웃음이 세어나온다. 그 비웃음을 상상하면 확실하게 대공기를 사용해서 상대방을 떨궈버릴 수 있는 상황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사용하기가 망설여진다. 지금이다! 하지만, 실패하면? "저거 뭐야? 병신. 지 혼자서 하늘 위로 날라가네. 저 새끼 이제 뒈졌다. 그냥 막고 있지." 아아, 지금인가? 지금 써야하나? 아닌가? 실패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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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이오리에게 무참하게 패배한 다음, 오랜만에 느끼는 진한 패배감을 가슴 속에 곱씹으면서 게임 센터를 나서니 어느세 저녁이었다. "그냥 대공기라도 한 번 써볼 것을 그랬나?" 대공기를 쓰지 못했던 건 손이 느려서도 아니고, 대공기를 사용하는 커맨드가 어떤 것인지 몰라서도 아니다. 쓰면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맞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로 하여금 대공기를 쓰지 못하게 만들었던 건 실패했을 때 당해야 할 다수의 비웃음과 실패했을 때 내가 지불해야 할 캐릭터 하나의 생명이었다. 그것들이 내 손을 막았다.

 결국, 고작, 기껏 그 정도의 이유였을 뿐이다. 결국 대공기를 쓰지 못한 나는 구석에 몰려 상대방에게 처참하게 얻어맞은 후 죽을 수 밖에 없었으며 손도 발도 내밀지 못하고 죽어나간 나를 향해 사람들은 비웃음을 보냈다. "병신. 게임 더럽게 못하네." 결국 죽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으며, 결국 비웃음을 당하는 것도 변함이 없었다. 실수를, 오판을 두려워하다가 결국 할 수 있는 것도 못한 체 더 큰 형태의 패배감과 수모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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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신이 아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어떤 과정으로 인한 결과인지, 그리고 이 상황에서 취해야 할 입장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는 건 이오리의 미친 듯한 점프 러쉬를 모두 대공기로 쳐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손이 있고, 입이 있다. 내 행동에 대한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내 입을 막았을 때,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입을 놀리지 못했을 때보다 더 큰 자괴감과 상실감 뿐이다. 어차피 앞 날을 알 수 없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머리가 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찬성이나 반대, 혹은 제 3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입이 있다. 그런데 내가 말을 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예측이 틀렸을 때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거냐고? 글쎄.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너의 예측이 틀렸을 때에 대한 책임을 져 줄 사람이 없다면 누구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서로 믿는 바, 예측하는 바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뿐이다. 비록 그것이 무의미한 공회전이 된다 하더라도.

 그래서, 나도 대공기를 지른다. 지르다 잃는 것은 얼마 간의 동전과 사람들의 비웃음이다. 그것과 할 건 하고 죽었다는 만족감을 바꾼다면 괜찮게 먹히는 일일 것이다.


by 슈리아 | 2008/04/30 20:09 | 잡스러운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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