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 많은 오해 속에 둘러싸인 체 살아가고 있다.
의욕을 가지고 뭔가를 내놓을 때마다 거대한 반대에 부딪힌 어떤 집단이 들끓는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꺼낸 말들에는 대부분 '오해'라는 단어가 들어가고, 어떤 공무 집행의 과정을 담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달굴 때 공무 집행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향해 '사진 한 장에 담긴 호소성에 빠져 상황을 오해하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하며, 어느 나라에서 들여 온 식품의 문제로 수 백명이 고통을 받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 어느 나라는 '진실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치고 있는 중이다. 너무 그럴듯하게 말해서 '진짠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뿐만 아니다. 주변을 돌아봐도 언제나 우리는 오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체 살아가고 있다. 지하철에서 잔뜩 발기한 물건을 여성의 엉덩이에 비비다 현행범으로 잡혀도 오해. 뒤에서 상대방에게 악담을 퍼붓다 당사자에게 추궁당해도 오해.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바람을 피우다 걸려도 오해.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주 예수님이 하늘 위에서 우리들의 삶을 스토킹하고 계신다면 '내가 저럴까봐 말까지 줬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나?'라 하실지도 모를 일. 오해를 막기 위해 우리는 손짓, 발짓, 표정, 말. 가능한 건 모두 동원한 체 소통하지만 그걸로는 아직 부족한지 우리는 아직도 끊임없이 새로운 오해를 생산해낸다.
물론 오해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비단 우리 세대만의 일도 아니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악의 없는 오해는 종종 인간 관계에 조미료나 본드의 역활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악의를 품은 누군가에 의해 생기는 분명한 불의마저도 몇 사람의 입을 거치고, 몇 번의 지면과 화면을 거치는 사이에 어느센가 '오해가 불러온 해프닝' 정도의 수준까지 끌어내려져 버리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오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가해자였던 자신의 위치를 여론의 공격을 받는 피해자로 둔갑시키며, 동시에 불의를 성토하는 사람들을 무지몽메한 마녀사냥의 가해자로 뒤바꿔버린다. 그리고 문제는, 우리들은 이런 악의를 품은 가해자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내뱉는 오해라는 단어 속에 가린 객관적인 사실 여부를 알아차리기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죄를 벌하기 위해 우리는 의심되는 모든 사람에게 정의의 철퇴를 휘둘러야 하나? 그 순간 우리는 정말로 그들이 말하는 '무지몽메한 마녀사냥의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백 명 중에 구십아홉 명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악의적인 오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더라도, 정말로 오해에 의해 집단적인 마녀사냥의 제물이 된 한 명의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있는가? 없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지만 거짓을 말하는 구십 아홉 명을 단죄하기 위해서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너무 어렵다. 구십아홉 명이 주장하는 오해라는 단어 속에 가려진 불의를 파해치기 위해, 그리고 한 명이 호소하는 진정 억울한 오해를 알기 위해서라도 백 명이 얽혀있는 저마다 다른 문제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파악해야만 하지만 그에 비해 개개인이 알고 있고, 알 수 있는 정보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지만 하나의 진실을 꿰뚫어보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고, 이해 관계에 뒤엉킨 사람들이 자기 말이 진실이라 주장하며 쏟아내는 저마다의 자료들 속에서 3자가 정확한 진실을 파악할 길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렇게 개개인이 파악할 수 있는 진실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에 신문이나 방송 등의 언론 매체에게 개인이 파악하기 힘든 진실을 대신하여 밝힐 할 책임을 부여했고, 그 때문에 그들이 스스로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때마다 앵무새처럼 감정 없이 되풀이하는 '언론 탄압' '언론의 자유'같은 말을 어느 정도 허용해주었다.
하지만 어떤가? 현실은 우리가 책임을 부여한 대부분의 언론 매체들이 구십구명의 불의를 숨기려는 자들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언론 매체가 스스로 주장하는 공정성라는 단어를 얼마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언론이 전하는 사실을 믿기 전, 우선 언론의 진정성부터 의심해야 하는 현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을 찾는다는 그 행위 자체에 무력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아무것도 믿을 것 없는 세상에 믿긴 뭘 믿어? 까고 보는 거지. 어차피 다들 양파라서 까도까도 또 깔 게 나오는 세상이잖아." 뭐, 이런 식으로.
진실을 숨기고 싶은 자들이 말하는 오해라는 단어를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궁씨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전의 관심법이라거나, 공간 개념이 확장되는 우주로 날아올라가 서로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개화시킨다는 SF적 발상까지 동원해야 할 판에 흩어진 개인 하나하나의 힘으로 오해라는 단어 속에 감춰진 진실을 찾기란 요원하게만 느껴지는 어느 날의 밤이다.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아놓은 구십아홉 명을 위한 언론 매체는 오직 유일하게 남아있는 입으로 '보이지 않는 진실'을 외치는 사람들을 '우민들에 의한 마녀 사냥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상황을 훌륭히 매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이 우민으로 전락한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아닌 너희들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이것 또한 오해인가?
[덧] 특정 세력 비하 의도가 있는 건 아닙니다. 겉보기에는 세상이 하수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틀린 건 틀렸다고 말도 좀 하고 필요하면 날라차기나 이단옆차기라도 좀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걱정되는데, 그러기에는 아는 게 도통 없어서 입을 꾹 다문 체 살아가고 있는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좀 한심해졌습니다.
진정 의지가 있다면 배워서라도 떠들어야 하지만, 배우려고 해도 세상의 중요한 정보는 이미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이 이리저리 꼬아놓은 바람에 그 사람들이 말하는 진실이 아닌 진짜 진실에 접근하는 건 개인의 의지만으론 어림도 없는 일인 것 같고. 나 대신 그런 거 좀 찾아서 알려달라고 신문도 꼬박꼬박 구독해줬는데 오히려 이 신문이라는 놈은 앞장서서 진실을 꼬아놓고만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꼬아놓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도 또 없고, 그러다보니 혹시 꼬인 건 신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고. 그래서 이젠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