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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2. 베라님에게 선물을 받았다. 지난 번에 블로깅을 하면서 칭얼거렸던 '판타스틱'이라는 잡지. 베라님께서 마침 몇 권을 가지고 계셨는지, 친절하게 남은 한 권을 소포로 붙여주셨다. 군대에 있던 시절에 가장 편지를 많이 보내주셨던 분 중에 한 명이 베라님이었는데, 베라님께서는 뭔가 편지 한 장만을 붙여주는 일이 없으셨다. 매번 편지와 함께 즐겁게 읽으라시며 책을 몇 권 동봉하여 보내주셨는데 그게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깊고 깊은 산중 한 구석에 쳐박혀서 맑은 하늘과 시원한 공기에 만족하며 사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고, 베라님께서 간혹 보내주시는 재미없는 책이 없었다면. 물론- 심심해서 죽을 일은 없지만, 군대에서 누린 즐거움 중 하나가 사라졌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 물론- 전역한 지금도 신세를 지고 있는 건 마찬가지지만. 뭔가 답례가 될만한 물건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언제나 하면서도 아직까지 기회를 잡지 못하는 건, 연락처를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에 판타스틱을 보내주시면서 놀랍게도 등기(연락처를 적어주시지 않으셨다!)로 붙여주신 걸 보면서, 앞으로도 한 동안 답례가 될만한 물건을 보내드리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포기는 안 한다. 3. 나는 선물을 제법 많이 받는 편이다. 낯선 남자에게서 잘난척하는 말투를 느끼셨다면- 그건 오해다. 사실, 다른 사람과 비교 평가한 다음 내가 선물을 많이 받는지 적게 받는지 가를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상, 스스로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물질적인 도움(현금은 제외. 현금은 '금전적인 도움'이라는 대체 용어가 있다.)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말이고, 나는 타인에게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았다. 물론, 그 도움이라는 게 타인에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고, 차 마시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약간의 찻잎을 분양받는다든지, 이런저런 세안 및 화장 용품을 많이 구입하는 분에게는 얼굴에 맞지 않는 것들을 받아온다든지, 살림 살이 중 긴급한 처분을 요하는 것들 중 내게 필요한 물건들을 몇 개 받아온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어느 쪽이냐고 굳이 묻는다면, 나는 주는 쪽에도 부담을 느끼지 않음이 분명한 일상의 소소한 떨이를 선물로 받는 걸 좋아한다. 그 이유는, 타인에게 뭔가를 받은 만큼은, 나 역시 그에 상응하는 뭔가로 보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뿌리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여유 분의 물건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내게 줄 목적으로 정성스럽게 구입해서 보낸 물건에, 나 또한 정성을 다해서 감사의 표시를 전하는 건, 솔직히 강박관념이고 뭐고 이전에, 당연한 거 아닌가? 4.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건 어렵다. 어렵다. 정말이지 어렵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물어보신다면, 뭘 선물해야할지 고민만 며칠을 잔뜩 하다가 결국 선물을 해주는 걸 포기해버리는 일도 있었을 정도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다. 선물을 보내는데 있어서는 결벽증에 가까운 기질이 있는 모양인지, 상대방이 선물을 받았을 때 적어도 기쁘다는 것 이상으로, 실제로 장식이라거나 눈요기가 아닌, 적극적으로 사용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는 덕분에 다른 사람이 선물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뻐할까 하는 것 이상으로, 얼마나 잘 사용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둔다. 자, 이 경우에는- 상대방의 취향과 성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물론, 선물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된다면 어느 정도 상대방의 기호에 대해서는 약간이나마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어쨌거나 사람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재주가 우리들에겐 없는 만큼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여기서 좀 더 나아가자면, 설령 상대방의 기호를 예측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선물하려는 물건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은 아닐지. 어쩌면 '하필이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물건은 아닌지 또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런 고민이 반복되다보면 나중에는 상대방에게 당당하게 다가가서 "선물 좀 할까 하는데, 뭐 받고 싶어요?" 라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실제로 몇 번 그렇게 하기도 했다.) 응? 선물은 꼭꼭 숨겼다가 깜짝~ 놀라도록 보여주는 게 제 맛이라고? 물론, 그게 제 맛일지는 모르지만, 선물을 줄 때마다 그런 식으로 했다간 나는 선물 고르다 지쳐 죽은 세계 최초의 인간 중 하나로 기록될 걸? 5.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최소한 얼마 전까지는 말이지. 6. 지포 라이터를 선물해주신 분에게 답례할 물건을 고르러 갔을 때의 일이다. 물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슨 선물을 주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 머리털이 빠질 정도로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뾰죡하게 답이 나오질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선물에 대해서 고민하던 때와, 최근에 있었던 이 일에 단 하나 차이점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그냥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선물을 사주기 위해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녀봤다는 거다. 물론, 한 두어 시간 동안 같은 거리를 몇 번이고 뱅글거리며 돌아다녔다는 것과. 그리고 같은 가계에 몇 번이나 들락날락거리면서 눈치를 받은 일과, 그걸 제외하고- 도저히 내가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금단의 구역에 발을 들이밀었을 때, 손님이나 종업원이나 할 것 없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별로 할 말이 없으니 제외한다. (웃음) 어쨌든,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썩 만족스러운 선물을 고를 수 있었다. 7. 상대방에게 어떤 선물을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하면서, 평소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칠 가계의 전시품을 새삼스럽게 유심히 들여다본다거나, 지금 내가 선물을 주려고 하는 사람이 어떤 물건을 좋아하고, 최근에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다고 했었는지 새삼스럽게 떠올려보기도 했다. 가계 앞에서 엇비슷한 물건을 두 개 놓아두고 눈으로 대조를 해가면서 "이 사람에게는 어떤 물건이 더 어울릴까?" 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는 것도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요컨데, 나는 지금까지 '선물을 받는 쪽이 얼마나 기뻐할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선물은 받는 쪽에 못지 않게 '주는 쪽'의 즐거움 또한 각별한 행위라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비단 선물을 받고 나서 기뻐하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도(물론, 그것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겠지만) 열심히 고른 선물을 상대방에게 전할 때까지 느낄 수 있는 쾌감 또한 각별한 느낌이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즐겁게 고른 물건을 선물한 이후에는, 예전처럼 상대방이 그 물건을 얼마나 즐겁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그 물건을 고르고 포장하고, 선물하기 위해서 들고 가는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기뻐해주는 것에 못잖은 즐거움을 보상받았으니 말이다. 8. 생각해보면, 순수하게 타인의 즐거움을 위한 것처럼 보였던 '선물'을 선물하는 행위 속에도, 자신의 즐거움을 찾으려는 욕구는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순수하게, '내가 좋아하는 상대를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는 행위는 사실 세상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런 건 없어도 관계 없다. 상대방에게 애정과 감사의 마음을 전할 때는, 철저하게 뻔뻔해질 필요가 있는 법. 상대방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방식을 고르려고 노력하는 것도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의 표시를 전하는 건 저쪽이 아니라, 이쪽인데 말이야. [덧] 혹은 9. 뭐, 본문을 다시 읽어봤더니 무슨 대단한 선물이라도 한 것 같이 써놓은 모양인데, 비싼 물건을 선물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선물하는 과정이 세삼스럽게 즐겁게 떠올라서 끄적거렸다. 그러고보니 원래 처음에는 베라님에게 판타스틱 선물 잘 받았다는 말을 전해드리려고 시작한 글인데, 이게 어쩌다가 이런 웃기는 결론이 난 걸까? 뭐,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런만큼, 그러거나 말거나의 삼미스러운 마음으로 그냥 내버려 둘 예정이지만. 그리고, 10까지 안 써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놈의 0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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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뻘플 ㄳ ㄲㄲ..
by 슈리아 at 08/11 ㅇㅇ 뻘플남기러 .. by 데이빗 at 08/04 봄에는 역시 철권.. by 퍼플리안 at 06/24 오랜만에 들러서 .. by 데이빗 at 06/04 2차 바츠 해방전쟁.. by 슈리아 at 05/24 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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