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노 요코 콘서트. - 칸노 여사님에 대한 이야기.

 (사진 없습니다.)

 콘서트가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에 도착했을 때가 7시가 다 되어갈 때 쯤이었습니다.

 20일을 위해서 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시간을 낼 수 있었습니다. 지인과 함께 일찌감치 신촌에서 만나 이른 저녁을 먹고 세종문화회관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번에도 돈가스라는 선택은 실패. 이것 참, 서울에서 먹는 돈가스는 왜 양과 질 중에 어느 것 하나도 만족시켜주는 게 없단 말인가.) 6시 30분쯤 광화문 교보 문고에 도착하여 [라쇼몽]을 구입하고, 최근에 나왔다고 들은 [하얀 로냐프 강] 4권도 구입할까하다 가방도 무거워질 것 같고, 단골 고객으로 찍혀버린 홍익 문고의 매상 일조에 기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세종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거대 유통사에 밀려 중소 서점들이 사실상 사라져버린 지금, 홍익 문고가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게 제게는 일종의 불사가의한 일로 까지 여겨집니다. 경영 상태는 괜찮은걸까?)



 사실 좀 더 느지막하게 갈 생각이긴 했습니다. 사람이 많은 걸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라 예약 접수 때 모니터 너머로까지 느껴지던 그 엄청난 사람들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덜 쐬고 싶었거든요. 콘서트 전에 팬들이 뿜어내는 열기 또한 콘서트의 일부라 여기는 분들의 의견을 감히 부정하고픈 생각은 없습니다만, 저는 좋아하는 건 철저하게 혼자 빠져드는 편이라 함께할 때 더욱 커지는 공연의 열기. 뭐, 이런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작 시간을 약 30분 가량 남겨둔 체 도착한 이유는 표를 예약을 해놓은 다음 예매처에서 보내준 예약 확인 문자만 문자 보관함에 저장해 둔 후 표를 수령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따로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혹 예약에 문제가 생기거나 "표는 30분 전까지 오셔서 수령을 완료하셔야 합니다." 같은 공지가 있었을지도 몰라 생각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했습니다.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늦게 도착했다 일생의 단 한 번 뿐일지도 모르는 기회를 눈 뜨고 놓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뒤통수가 간지럽더라고요.
 다행히 표를 수령하는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예매 창구에 사람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이더군요. 다행히 예매한 표는 창구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수령.


 아 참! ...주민등록증 떨어뜨린 거 친절하게 주워주신 분!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문제의 포스터.
 칸노 요코의 얼굴이 인쇄된 포스터를 예약자 전원에게 증정했는데 이걸 받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혹시 함께 온 지인이 가지고 싶어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받은다음에 필요하시냐고 여쭤봤는데 저와 마찬가지로 별로 가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 때부터 포스터는 가지고 있기 부담스러운 짐짝으로 돌변. 가지고 다니기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하얀 로냐프 강]의 구입도 보류했는데 여기까지와서 포스터를 손에 쥐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진 않았습니다. 무겁지는 않지만 거추장스럽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길고, 고무줄로 메어주질 않아 만 체로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느슨하게 풀릴 것 같았거든요. 결국 꺼림칙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쓰레기 통에 투척했습니다. 필요 없다고 돌려주려고 했는데 예매처가 너무 혼잡하기도 했고.

 입장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석을 완료한 상태라 곧 콘서트가 시작했습니다. 의자 뒤편의 액정에 '2시간 20분 동안 진행되며 휴식은 없다.'라는 내용의 안내가 잠깐 떠올랐는데, 그걸 보면서 이제 시작된다는 즐거움보다도 앞으로 2시간 20분만 지나면 6월 내내 일일여삼추의 기분으로 기다렸던 이 공연도 끝나는 걸까. 라는 상실감이 잠깐 몸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그 동안 칸노 여사님께서 작곡에 참석하신 애니메이션의 간단한 영상과 주요 음악들이 하나씩 소개되었습니다. 떠듬거리며 순서를 나열해보자면 '마크로스 플러스' '카우보이 비밥'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지구소녀 아르쥬나' '턴에이 건담' '울프스 레인' '공각기동대'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군요. 콘서트 시작 전에 내력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담긴 영상을 보여주는 건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유난히 그녀가 제작에 참여한 작품들을 좋아해서인지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다른 사람들 또한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모양인지 스크린에 잠깐 머무르며 지나가는 영상과 주제가들이 바뀔 때마다 열광적인 함성으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홀이 들썩거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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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음악들 중에 가장 먼저 공각 기동대의 1기와 2기 오프닝. 그리고 OVA인 줄로 알고 있었다가 TV판이라는 따끔한 충고를 듣고 저를 놀라게 했던 장편 애니메이션  Solid State Society. 줄여서 SSS라고 불리고는 하는이 작품의 오프닝 곡인 Player가 차례차례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니, 중간에 카우보이 비밥이 하나 끼였던가?
 어쨌든 공각 기동대의 음악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익숙하게 들었기에 그럭저럭 음은 알고 있어 즐거이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가슴에서 감동이 용솟음친다는 식의 과장된 표현을 쓸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까지는 아닌지라 시작을 장식하는 음악으로는 더 좋았다는 게 솔직한 기분. 처음부터 가장 듣고 싶었던 노래를 들어버리면 너무 감동해버려서 그 이후에 진이 쏙 빠져릴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쉽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각 기동대가 한 차례 지나니 그 이후에는 칸노 요코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카우보이 비밥의 시리즈가 나오더군요. 'Tank!'로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Don't Bother none가 나오더군요. 아마도 no disc인지 하는 묘한 제목으로 우리 나라에 수입도 되어 핫 트렉 등의 거대 음반 매장에서 일본 음악 쪽을 잘 뒤져보면 찾을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도 이걸 파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가사가 독백조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가사를 슬쩍 듣는 것만으로 즉석에서 독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어 실력이 좋을 리도 없어 음을 머리 속에 되풀이하면서 듣기만 했습니다만, 카우보이 비밥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매우 즐거워 하시더군요. 앞쪽에 계시던 두 분께서는 끊임없이 서로 이야기를 교환해가며 감동을 드러내기 바쁘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그 모습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지구소녀 아르주나'의 '공기와 별'이 나오더군요. 저는 아르주나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한 창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을 때 스쳐지나가는 정도로 봤었던 게 전부였습니다만, 그 와중에도 주제가는 기억에 남아 있었는지 곡의 전체가 떠오르지는 않고 도입부나 후렴부 중에는 얼핏 귀에 익은 음들이 지나가는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카우보이 비밥의 삽입곡 중 하나인 'Call me Call me'가 나왔습니다. Real Folk Blues에 못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자기 색을 가진 이 음악을 들으며 오프닝 이후 처음으로 가슴 속이 울렁거리더군요.

 그 이후에는 이번 공연의 개최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라그나로크2'의 음악들이 한 동안 주로 연주되었습니다. 중간에 카우보이 비밥의 주요곡 중 하나인 'Real Folks Blues'와 ELM이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이후 1시간 동안은 라그나로크2의 OST 연주에 집중되었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쓸만한 말이 없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음악이 좋지 않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고, 단지 제가 라그나로크2의 음악에 대해서는 '좋았습니다.' 이외에 따로 할 수 있는 말이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음악에 기술적인 평가를 늘어놓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가치관을 세운 체 살아가지는 못했거든요.
 
 (아,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Din Don Dan Dan' 라는 곡인데, 이게 뭐랄까. 누구의 머리 속에서 나온 발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간단한 라이브 콘서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뒤쪽의 무대가 열리며 일군의 오케스트라 단이 등장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곧 좌석 뒤편에 '라그나로크2'의 동영상이 흐르면서 대표곡 중 하나인 'Din Don Dan Dan'이 흘러나오더군요. 여기서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대체 이건 사람 심장 떨리게 하는 무대 장치는 누가 떠올린 거야? 아, 그러고보니 Stone Music 역시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저렇게 귀엽게 나노시는 여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예전 턴에이 건담 공연 당시 오케스트라 단 사이를 춤추며 뛰어노시는 장면과 겹처 보였습니다. 저런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으로 불후의 명곡을 태연히 내놓으시다니!!)
 
 사실, 이쯤에서 고백합니다만 저는 '라그나로크2'의 음악을 들으러 온 게 아니라 칸노 여사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셨던 익숙한 음악들이 듣고 싶어서 콘서트를 찾았었습니다. '라그나로크2'를 좋아하시거나 칸노 여사님의 음악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마음이 상하는 말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녀가 만들었고 제가 즐겼던 음악들을 눈 앞에서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솔직히 다른 데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제가 칸노 여사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가 만든 음악이 작품들을 보면서 들었던 감정들을 가장 생생하게 되살려주기 때문입니다. 콘서트 시작과 동시에 간략한 소개와 함께 스쳐 지나가는 소개 영상이 스쳐 지나갈 때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습니다. 그 잛은 영상이 지나가는 와중에, 그 작품들을 보면서 느낀 감정들이 마구 되살아났습니다. 한꺼번에 마구 되살아나버리는 바람에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음악은 작품의 일부나 조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삼켜버려요. 그녀의 음악은 작품과 떨어져도 홀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녀가 참여한 작품에서 그녀의 음악이 빠지면 그 작품은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녀의 음악과 누군가의 작품이 함께 어울릴 때 지금까지 우리가 가슴을 울리며 보았던 불후의 명작들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이번 라그나로크2의 콘서트에 느끼는 개인적인 아쉬움은 콘서트의 절반을 차지했던 '라그나로크2'의 음악들에 제가 특별한 감정을 품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 작품을 전혀 즐겨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물론 그냥 들어도 매우 좋은 곡들임에는 분명하지만(이건 결코 칸노 여사님께서 만든 음악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좋아한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좋은 노래들입니다!) 그녀의 곡은 그녀가 참여한 작품을 이해하고 있을 때 가장 강렬하게 빛을 발합니다. 아마도 제가 라그나로크2를 좀 해본 일이 있다면 문자 그대로, 눈물을 흘리며 볼 수 있었을지도 몰랐겠지요. 이번 공연에서 유일하게 아쉬움이 남는 것이라면 그것 뿐입니다.
 ...라그나로크2 좀 할걸 그랬나.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세 'Din Don Dan Dan'이 끝나고 'Blue'와 '반지'. 그리고 '약속은 필요없어'가 한 번에 나오더군요.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앞쪽에 있는 분들은 머리를 흔들면서 서로 '이것은 감동적인 역사의 순간이며 지금 우리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기억의 순간에 서 있다. 울자! 듣자!'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고 있었고 함께 갔었던 지인께서는 '약속은 필요없어'에서 결국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노래를 따라부르시기 시작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박수 치고 발 구르고 따라 부르고... 극적인 소란스러움은 없었지만 다들 자신들이 받은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체 허둥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러고보니 'Blue'를 부를 때 객석 한 쪽이 잠깐 소란스러웠는데, 그게 알고 봤더니 그랜드 피아노 쪽에서 나타나신 사카모토 마야씨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무대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바람에 확인을 못했습니다만, 그런 쪽에 대해서는 억울해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진 않군요. 귀로는 분명히 들었겠지 뭐.

 그리고 '약속은 필요없어.'까지가 끝난 다음, '이제 혹시 턴에이 건담의 '달의 고치'를 혹시 불러주시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후로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시작하시더군요. 달의 고치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턴에이 건담 차회 예고에 수록된 음악 중 하나인 '군화의 기억' (추억이라고 하는군요. 왜 기억으로 알고 있었을까?) 로봇대전 외전에도 쓰였던 곡인 마크로스 플러스의 수록곡인 Dog Fight. (이것도 확인 결과 'Fly up'이라고 하는군요. ...내 기억에 어딘가 고장이 난 건가?)  그 외에는 에스카플로네와 울프스 레인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음악들과 몇 곡이 더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세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군요.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좀 더 빨리 써놓을 걸 그랬군요.


 그 후 칸노 여사님의 주도하에 맴버 소개를 빙자한 만담판이 벌어졌습니다. 다들 본편 못지 않게 좋아하셨고 저도 꽤 재미있었습니다. '나는 작품에만 흥미가 있으며, 그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는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라고 말하고 다니던 것도 상대가 칸노 여사님쯤 되는 경우에는 잠시 동안이나마 철회한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로 턴에이 건담 공연 동영상을 보기 전에는 칸노 여사님께서 어딘지 '우울한 천재'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지레짐작했었던 일이 떠오르는군요. 아니. 어디 사는 스킨해드 영감님마냥 자기 파괴적인 작품들을 생산해내는 것으로 혼돈의 시대를 보냈던 그런 모습까진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음악에 빠진 음악광이라는 이미지는 가지고 있을거라 생각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막상 처음 만난 요코 여사님은 무대 위를 춤추며 뛰어다니면서 아기처럼 몸을 흔드는 유쾌하기 짝이 없는 분이시더군요. 더군다나 제가 알고 있던 우울한 천재라는 이미지 또한 그녀가 영감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 스스로가 자신은 '자신은 괴로웠던 적이 없다' 라고 말하시는 것으로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고요. 어떤 사람에 대한 판단을 그 동안 쌓아놓은 몇 개의 결과물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다라는 간단한 진실을 다시 한 번 뼈져리게 깨닫게 되었었습니다. 장난스러운 한국어로 "똥!" "똥!" 거리실 수 있는 천진난만함과, 40대에 접어든 중년의 나이에도 말투에 10대의 싱그러움이 여전히 묻어날 수 있는 사람이 그녀 외에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네요.

 만담도 끝나고 라그나로크2의 'Hodo' 라는 음악을 모든 맴버가 함께 부르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가 싶었습니다만, 그걸로 끝이 아니어습니다. 다른 모든 스텝과 게스트들이 퇴장하고 난 후, 오케스트라 무대도 원래대로 돌아간 후 피아노 하나만이 남은 어두운 무대에 홀로 남은 그 상황에서 솔로 피아노 연주를 하셨습니다.
 그 순간은 저에겐 죽기 전에는 꼭 경험하고 싶었던 소원 중 하나를 풀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플레이하며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이후로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던 열망. '그녀가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로 대항해시대의 음악을 듣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게 단 하나라도 좋았습니다. 허나 하늘이 '달의 고치'를 끝끝내 듣지 못한 소년을 위해 은혜를 배푸셨는지 대항해시대 음악이나마 2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중해 항구의 테마 음악인 'Mast In The Mist'와 대항해시대2 최고 인기인이라고 할만한 빨간머리 여해적 카탈리나 에란초의 테마 'Catalina'의 두 곡을 불러주셨습니다. 그 피아노로 쳐주실 때 얼마나 몰입을 했는지 어두운 배경에 여사님과 피아노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바람에 순간 블랙 아웃 현상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아아, 언젠가 죽기 전에는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여사님. 그 때는 Southern twilight를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 죽으라 하시면 기쁘게 죽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장난스러움을 잃지 않으셨던 여사님의 재치가 공연이 끝나감에 아쉬워하던 관객들을 한 번 더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피아노 치는 모습을 프로젝터로 송출해주고 계셨는데 갑자기 프로젝터가 흑백 화면으로 바뀌어 버리더군요. 처음에는 사소한 실수로 인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칸노 여사님께서는 그걸 슬쩍 보시더니 준비해두셨던 카드에 미리 적어두셨던 "오늘 어땠어?" "즐거웠어?" 맨트를 보여주시는데... 이게 뭐랄까. 사람의 가슴을 울리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아쉬워하던 건 마찬가지였던지라 전부 일어나서 손벽치고 함성 지르더군요. 그런데 "고작 그것뿐이야?" 라고 장난스레 카드를 올리시자 홀이 떠나갈 정도로 강렬한 외침들을 내지르시고, 앞에 게시던 두 분께서 "꼭 오세요! 꼭 오세요! 어디라도 찾아갈께요!" 같은 뭐랄까.; 듣는 쪽이 부끄러워지는 원색에 가득 찬 환호성을 내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마침내.

 결국은 익고야 마는 컵라면처럼, 결국은 오고야 마는 이별의 시간. 'Bye Bye'라는 맨트와 함께 무대는 점점 어두워져가고, 예정된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우리를 즐겁게 해 주셨던 칸노 여사님께서는 떠나가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이 꿈처럼 느껴집니다. 비록 오프닝 영상에는 틀어주셨는데 실제로는 나오지 않은 턴에이 건담의 '달의 고치'를 듣지 못한 것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아있지만(정말이지, 너무, 너무, 너무 듣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만든 음악들 그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작품의 세계를 그토록 정확한 음색으로 대변했다는 점에서 최고의 음악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기대하던 모든 것들이 충족되어버리는 것도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지요. 혹, 그라비티 측이나 다른 쪽에서 이번 공연의 성공으로 재공연을 계획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 여사님께서 다시 한 번 콘서트를 열어주시기를, 그리고 그 자리에 제가 있어보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최고였습니다. 다시 뵐 수 있기를, 그리고 다시 그녀와 함께 놀 수 있게 되길.


 [덧] 제목에서도 이미 밝혀놓기는 했지만 콘서트 관람 후기. 라기보단 제가 칸노 여사님에 대한 이야기가 글을 쓰게 된 목적입니다. 뭐, 오리가님이나 아마네 마이님, 사카모토 마야님의 공연 메너에 대해서나 열정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훌륭했지요. 다른 분들의 공연 후기에 보면 그런 쪽으로는 비교적 자세하게 기제되어 있습니다.

 제가 정말로 보고 싶었고, 공연 내내 눈길로 쫓았던 대상은 칸노 여사님었으니, 적어도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부족하다 싶지 않을 정도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러고보니 했던 말이 또 나오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수정할 필요는 별로 못 느끼겠습니다.



 [덧] 후에 확인을 해봤는데 공연 순서같은 게 제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꽤 많이 다르더군요. 혹 이번 공연에서 어떤 곡들이 나왔는지 궁금하시다면 이쪽을 확인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by 슈리아 | 2007/06/21 23:42 | 잡스러운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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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 MELANCholi.. at 2007/06/23 13:41

제목 : 칸노 요코 내한공연 [RAGNAROK2] 세트리스트..
이런저런 도움으로 겨우 완성했습니다. 사실 별로 의미는 없는 일이지만 모바일 플레이톡으로 공연 실황 중계를 시작한 시점부터 이건 저의 숙명이었던 겁니다 후후후후 (뭐래, 웬 헛소리;;;) 지적과 피드백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필요하신 분들께 자그마한 도움이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올려봅니다. 라기보단 기껏 완성한건데 묻히는게 아깝다는 쓸데없는 근성 하나로 작품이 바뀔때마다 문단 짤랐습니다. 그편이 더 보기 편할것 같아......more

Commented by 세루 at 2007/06/23 13:40
보내주신 트랙백이 걸려있지 않아서 찾아왔는데, 링크 주소가 조금 잘못되어 있네요^^; 링크에는 http://seru.egloos.com/3243771 이 주소를 첨부해주시고, 트랙백은 글 수정 메뉴에서 글쓰는곳 밑에 보시면 '트랙백' 버튼이 있으실거예요. 거길 누르면 창이 새로 뜨는데 거기에 http://seru.egloos.com/tb/3243771을 써주시면 됩니다. :)
저는 요코 여사의 최고 명작이라는 대항해시대2를 몰랐었는데, 이렇게 원곡으로 들어보니 게임이 새삼 하고싶어 지는데요. 잘 들었습니다 ^^
저도 트랙백 보냅니다 :D
Commented by milly564 at 2007/06/27 23:41
아 몇일동안 몸이 안 좋아서 이글루 못 들어왔는데 링크 신고 드렸나 모르겠군요 링크 신고 드립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6/28 08:14
[대항해시대 2] 음악이 나왔단 얘기는 들었지만… "Catalina"를 연주하셨다고요?! ㅠㅠ (크흑, 수 년 만에 다시 한 번 '역시 OST를 사야 하는데' 병이… OTL)
Commented by 슈리아 at 2007/06/29 12:52
milly564// 감사합니다. 창세기전 포스팅 재미있게 읽고 있었습니다. (웃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다시 열어주시는 것도 좋을 듯 한데 말이지요. : >
Commented by 슈리아 at 2007/06/29 12:57
그 병에 걸리신 겁니까!?

...뭐, 그래도 대항해시대OST를 못 사서 생긴 병은 사면 낫는다. 라는 처방전이라도 있어 다행이지만, 요즘 저는 처방전이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캐치22를 사고 싶어!' 병에 걸려서 쿨럭거리는 중입니다.
Commented by 슈리아 at 2007/06/29 15:50
아, 그리고 저는 "대항해시대 OST사야 하는데" 병에 걸리진 않습니다. 있거든요. 하하하-!

(뭔가 재미있는 걸 사고 즐거워하고 계셨던 베라님에 대한 복수. 복수는 그 이름을 부른다. : > )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6/29 21:30
이익, 저 [캐치-22] 있어요 -_-)v
Commented by 슈리아 at 2007/06/29 23:51
우억. 복수에게 이름을 불렸다. 미워요!!












...한국어로? 원서는 아직 적잖이 부담되는지라.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7/10 19:24
왜 무덤을 두 번 파십니까. 당연히 한국어판이죠 -_-)v
Commented by 슈리아 at 2007/07/10 19:33
OT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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