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책 표지를 스캔할 여력이 되지 않아 인터넷으로 책 표지를 좀 찾아볼까 했더니 그럴 듯 한 크기의 스캔이 없을 뿐더러 마음에 드는 딱 하나의 스캔은 [최연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이라는 표제어가 대문짝만하게 찍혀있어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유명한 작품들을 유명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싫어하는 삐딱한 성격의 발로는 아니다.(그런 마음이 아예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겠지만 최근에는 마음 속에 찌꺼기마냥 남아있던 그 삐딱한 심리마저 어떤 글을 통해 홀가분하게 벗어던질 수 있었다.)
  베라님의 블로그에서 보았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알프레드 바우어 상 수상 소식 블로그. 를 통해서 읽었던 무엇인가에 상을 준다는 것의 의미. 그것은 지금까지 당신이 해온 것들은 틀리지 않았다고 격려해주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닐까. 상을 수여받지 못한 다른 작품들보다 그 작품이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주는 것 아니라 조금 더 수고했다고 위로하기 위해서.

 그러나, 내가 수상이라는 평가 시스템에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과 블로깅에 쓸 책 표지에 수상 소식을 대문짝만하게 써붙여놓은 띠를 인정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수상을 호들갑스러운 홍보의 수단으로 써먹는 거야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받아들여 줄 수 있을진 몰라도, 미관상 안 좋다. 그것 뿐이다.

  그래서 1분만에 그림판을 이용한 삭제 작업을 거친 책표지로 대체. 올려놓고 보니 [이걸 왜 했나...] 싶기도 하다. 이런이런.

 








 1. 책은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라는 말을 붙이진 않았다.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가 아니라고 소리쳐 항변하고, 인생을 아름답고 사람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이해하려 노력할 때 보다 나은 인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소리높여 주장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그 주장들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주인을 꿰뚫는 창이 되어 내뱉은 자를 향해 날아들어온다.

  나는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가진 생각에 반박을 한다는 것은, 내 생각을 이해하지 않았거나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와 순간 동일해진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말은 스스로를 찌르게 될 뿐이다. 다시 말하건데, 결단코 인간은 자신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어진 생명체이다. 우리들은, 너희들은, 모두는. 인간들은.

  끊임없이 사랑하고, 끊임없이 이해하려 노력하면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하게 될 거라고 설득하려고 들지는 마라. 만약 당신이 타인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서 결국 자신 아닌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해버리게 되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오랜 고행, 혹은 참선 끝에 드디어 신성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아니면 서로를 직관적으로 파악해버리는 뉴타입으로 진화한 것이거나.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당신이 인간은 아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이제부터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에게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혐오적 시각을 가진 자라 단죄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관계는 없다. 하지만 그 단죄는 당신들이 타인에게 행한 수많은 오해 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운 것이긴 하지만, 나는 인간을 사랑하고 싶다. 문제는 인간이라는 동족 놈들을 바라볼 때마다 아름다운 점이라고는 이빨 사이에 끼인 고춧가루만큼이나 찾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을 사랑 하고 싶다. 비록 이해는 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이해하기 위해 이해한다는 것은 적어도 사람에게 있어서는 모순된 말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좀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사랑하기 위해, 좀 더 적은 노력으로 편리하게 사랑하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려고 드는 것일 뿐이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혐오스러운 발상에서 시작된 그 행위는 결국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붙이고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로스가 당한 결말로 끝을 맺게될 뿐이다.

  할 수 없는 일을 행한 대가는, 이카로스에게는 영원한 추락. 인간에게는 끊없는 외로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들었던 오만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체, 자신에게 이해되지 않는 상대방에 절망하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해받지 못한다는 외로움을 느끼며 말라갈 뿐.

 ...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전혀 책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었군.

  처음부터 말을 한 것이지만 여기까지 읽느라 까먹었을 것이 분명한 여러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책은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라는 말을 붙이진 않았다. 이다. 소년과 소녀의 작은 만남을 다룬 이야기지만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야기도 없고, 읽는 이에게 책에서 눈을 땔 수 없게 만드는 전개도 보이지 않는 수수하다 못해 건조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책이, 모든 부분을 제쳐놓고 2004년 슈리아 문학상 수상작에 당선될 뻔했을 정도로 심사 의원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단순한 진실을 지금까지 대부분의 작가들이 중얼거렸던 "어차피 인간은 서로는 이해할 수 없어." 라는 절망과 채념으로 표현한 게 아니라 "인간은 서로를 이해못하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또다른 긍정의 가능성으로 표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입 아프게 말하지만,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인 이상 결코 변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우리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드는 근본적인 이유. 바로 상대방을 사랑하려고 하는 행위는 이해의 여부와는 관계 없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사랑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오직 하나, 이해가 아닌 인정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힘 쎄고 오래가는 인간 본연의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 스스로 고독을 택했다고 믿으려하는 소녀와, 고독이고 나발이고 어쨌거나 관심 없는 소년. ...비슷한가?

 

 하츠 :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하려고 하지 않는 육상부 소속의 여고생.

 니나가와 : 아이돌(...인가?) 욜리쨩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길 원하는 고교생 히키코모리.

 

  문체도 전개 방식도, 그다지 내 흥미를 돋우지 못하는 이 책을 처음 몇 장을 넘긴 다음 덮어두지 않은 이유는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 때문이었다.
 히키코모리에 대한 문제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이후로 각종 메체들에서 다루어지는 히키코모리의 존재는 줄곳 어딘가 이상이 있다는 식의 부정적인 모습. 혹은 기계화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자의 모습. 혹은 기계화된 사회의 그늘 속에 숨은 보이지 않는 피해자. 라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아, 맞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넘어설 수 없는 저 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소위 시쳇말로) 본좌성. 으로 비유하는 부류도 있기도 하지만, 그러시거나 마시거나.
 어쨌거나, 자신이 히키코모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히키코모리라고 단정된 사람들에게 내리는 평가는 대체로 자신보다 낮은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며, 그렇지 않더라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지극히 높은 곳에 있는 존재를 바라보는 투였기에 주인공인 하츠가 니나가와를 바라보는 시각은 내게 매우 독특하게 보였다. 그녀는 니나가와를 자신과 똑같은 위치에 있는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츠는 욜리쨩의 모든 것에 대해 집착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뭐, 좀 이상하긴 한데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한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주인공 하츠의 아이덴티티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맺음으로써 생기는 소통의 기쁨이 아니라 그 관계를 잃음으로써 느끼는 외로움을 먼저 떠올리는 하츠는 애써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척 꾸미며 다른 사람이 내미는 소통의 손길을 거부한다. 그렇게 상대방의 영역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영역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것도 거부하기 때문에 하츠는 "선생님이 실험을 위해 여섯 명씩 한 조를 짜라고 말할 때" 짧은 순간이지만 복잡하게 뒤엉키는 교실 내의 시선을 혼자서 깨닫고 학급 안에 펼쳐진 복잡한 교우 관계를 냉정하게 파악하여 친구인 키누요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그런 걸 알고 있다니 놀라워."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복잡한 교실 내의 시선이나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교우 관계 따위를 바라보고 있을까? 그런 면을 생각해 볼 때 하츠의 단절감은 그 시절의 여고생답게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신경쓰지 않는 척을 하는 하는 것이, 실은 매우 신경쓰고 있다는 증거다." 와 비슷한 말이 어감을 달리 하여 우리 주변에는 무수히 굴러다니듯이 자신이 아닌 다른 그룹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키누요에게 "그냥 중학교 때처럼 우리 둘이서 즐겁게 지내면 안 돼?"라고 투정과 빈정거림과, 애원이 적당히 섞인 말을 하면서 그녀는 무의식 중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힘으로 열 수 없는 차가운 단절의 문을 열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나니가와의 등을 걷어차고 싶은 감정을 느끼는 것일 것이다.
 나니가와의 등을 걷어참으로써, 스스로 걷어찰 수는 없는 자신의 등도 걷어차버리고 싶다는 욕구. 본인이 느끼건, 느끼지 못하건 나니가와는 거울 속에 비친 하츠 자신의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욜리쨩이라는 아이돌에 빠져 주위의 관계를 스스로 단절시킨 니나가와 역시 다른 형태를 취한 하츠의 모습. 나니가와의 방 안에 굴러다니는 그만의 공상의 산물. 욜리쨩의 얼굴 사진을 잘라 소녀의 몸 사진에 가져다 붙인 모습 따위를 보면서 그녀는 정상이 아니라고 중얼거리지만 그것은 하츠가 자신은 철저하게 외부인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교우들의 재빠른 시선이나 학급 내 관계를 모조리 파악하고 있는 것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집착인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도 않다. 왠지 나는 욜리쨩의 얼굴에 어린 소녀의 몸을 붙여놓은 사진을 보고 "이건 정상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하츠의 말이 나니가와에게만 하는 말인지 궁금하다. 마음대로의 추측이지만 그녀는 욜리쨩에 대한 나니가와의 집착의 산물을 보며 타인과의 관계를 갈망하고 있는 자신의 집착을 엿본 게 아닐까



  3.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루 아침에 오고가는 몇 마디의 말이나 몇 마디의 눈짓만으로는 더더욱. 그러나..

 

  그리하여 약한 부분을 깨닫게 된 하츠와 나니가와가 서로의 결여된 부분을 보충하여 보다 희망찬 미래를 향해 함께 나가간다. ...라는 식의 결말이라면, 애초에 1번을 시간 들여 길게 중얼거릴 이유가 없는 법. 타인과 관계하기를 갈망하는 스스로의 욕망을 깨달아가면서도 하츠는 마지막까지 상대방과 소통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친구인 키누요와 함께 나니가와의 방에서 자며, 키누요가 떠는 수다를 들으면서도 그녀는 자신과 나니가와가 아닌 반 친구들을 이야기하는 키누요를 냉정하게 파악해낸다. 하지만 그 뿐이다. 마지막까지도 그녀는 키누요에게 (비록 부질없는 짓이지만) 자신들과 함께 있을 때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거나. 욜리쨩의 경호원들에게 험한 꼴을 당한 나니가와가 불쌍하지도 않느냐는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어차피 타인은 다른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기에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생각을 하면서도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길 포기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해시키려고 하는 행위는 무의미한 법.

 그러나, 하츠는 거기서 모든 것을 끝내고 키누요와 함께 잠들어버리지는 않는다. 새벽녘까지 에어콘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하츠는 이윽고 베란다 나가서 욜리쨩의 콘서트를 본 후 새우처럼 등을 오므린 체 베란다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나니가와에게 다가간다. 나니가와는 다가오는 하츠에게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욜리쨩에게 다가갔을 때, 나 , 그 사람을 이제까지 그 어느 순간보다 가장 멀게 느꼈어. 그녀의 부스러기들을 긁어모아 상자 안에 체워넣었을 때보다 훨씬"

 단순한 한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 말이 가슴을 울렸다. 상대방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그 순간에 오히려 그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나니가와의 말은 지금까지 하츠가 상대방과 애써 관계를 거부하는 것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관계라는 것은 상대방을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받아들이는 것은 이해한다는 의미이지만-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행위는 누구에게도 불가능하다. 하츠는 상대방을 자신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와의 관계는 자신에게 단절감과 와로움을 줄 뿐이라는 의미를 자신도 모르게 깨닫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나아가서 사람이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이해하지 못하는 괴로움에서 도망치려 사람을 멀리한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하츠는 이번에도 나니가와를 통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듯 한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은 마지막 한 페이지의 분량을 하츠는 그냥 맥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아무 말 없이 나니가와를 동정하는 것으로 보내지 않는다.

 그녀는 엄지발가락으로 나니가와의 등을 꾹하고 찍어누른다. 그 행위는 마치 자신이 직접 걷어 찰 수는 없는 자신의 등을 거울에 비친 나니가와를 통해 대신 걷어차는 것일지도 모른다.

 발로 걷어차고 싶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니가와는 하츠가 바라보는 자신의 거울이라는 점에서 그를 걷어찬다는 것은 나아가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글의 마지막까지 하츠와 나니가와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 누군가와 관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을 걷어참으로써 그 자리에 자신을 영원히 머무르게 만들지 않는다.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발로 상대방의 등짝을 걷어찬다는 것이 아마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후의 말이 어떤 단어가 이어지는지 알 수는 없다. 그 부분에서 책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니가와의 등을 걷어차면서까지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는 하츠를 보면서 "하지만..."이라는 단어 뒤에 "어차피"라는 단어가 붙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나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서로의 등을 걷어차가면서-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세상으로.

 

 

 

 [덧] 후다닥 날려버린 다음, 가장 기본적인 퇴고 작업도 거치지 않은 거친 글이지만 왠지 이 글은 수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않는다. 하다못해 당장 눈에 보이는 수 많은 오타와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들마저도. 원래부터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고 살아온 것 같긴 하지만, 이번 블로깅은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중구난방이다.

 

by 슈리아 | 2007/04/13 22:21 | 잡스러운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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