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완간 기념.
 태어나서 언제 이런 글을 다시 써볼까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쓴다. 좋아하는 책은 많지만 책장 앞에 쌓아두고 심심할 때마다 꺼내 일게 만드는 책은 그렇게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어렸을 때는 [먼나라 이웃나라]와 [전략 삼국지 60권]이 그런 역활을 했었고, 중학교 시절 이후에는 한 동안 [드래곤 라자]가 그 영광을 차지했었다. 조금 나이가 들면서 지금은 [로마인 이야기]가 그 역활을 대신하고 있다. 

 15권으로 그녀의 이야기가 완전히 마무리 된 지금, 어딘지 모를 아쉬움이 가슴을 서늘하게 하여 글을 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는 그녀의 영향을 직, 간접적으로 매우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얻게 된, 가장 큰 가치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그 누구의 생각도 그의 생각이라는 것만으로 전적으로 옳은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것을 선택해서 받아들일 권리와, 그리고 의무가 있다.

 는 것. 그녀의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지만, 반면 그녀의 이야기에서 공감할 수 없었던 부분 또한,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 못지 않게 많았다. 오랜 시간 같은 글을 반복해서 읽으며 나 자신에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전적으로 옳은 것이 될 수는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녀는 책을 통해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자신을 다그치는 것의 중요성 또한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그리고 그녀의 책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내게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보편적인 가치 하나를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나는 그녀의 마지막 글에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며 이런 글을 썼었다. 언제 이런 글을 다시 쓸 수 있을까. 싶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글에 나름대로의 작별 인사는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그녀의, 글을, 읽었다.



 2005년 4월 17일. 이탈리아의 로마노 근교 작은 고문서 보관소에서 편지 하나를 발견했다. 빛 바랜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무명 끈으로 봉한 그 편지가 쓰여진 것은 기원전 43년. 내용은 죽음을 앞에 둔 카토가 친구인 키케로에게 보낸 편지였다.


카토가 키케로에게 보냅니다.


 나는 지금 혼자 있습니다. 혼자 있다는 말의 의미는 지금의 내게 매우 적절한 말인 듯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지금 혼자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말입니다.
 지금 내 옆에는 단검이 한 자루 있습니다. 이 편지를 다 쓰고 난 후 이 단검은 내 가슴 속을 꿰뚫게 되겠지요. 그리고 내 가슴을 향하는 단검의 자루 끝에는 내 양 손이 있을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합니다.

 아마도 이 편지가 당신에게 전해질 떄 쯤에는, 당신 뿐만 아니라 로마의 모든 시민들, 심지어는 하찮은 노역에 종사하는 카르타고 출신의 노예들조차 탑수스에서 일어난 회전의 결과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패배했습니다.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우리는 탑수스에서 패배했습니다. 그 결과는 실로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유바는 카이사르의 게르만 기병대의 추적을 간신히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것은 그에게 재기의 기회가 아니라 더욱 비참한 형태의 죽음을 안겨 줄 뿐이었습니다. 누마디아의 국민들은 성문을 걸어잠그는 것으로 승자에게 자신의 왕을 바쳤습니다. 왕은 자신의 눈 앞에서 문을 걸어잠그고 쥐 죽은 듯 침묵을 지키는 자신의 국민들을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유바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결단은 이곳까지 소식을 가지고 도착한 전령을 통해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페트레이우스와 함께 서로의 목을 치는 방식으로 자살했습니다. 자마의 시민들은 눈 앞에서 벌어진 왕의 죽음에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한때 자신들을 다스리던 왕의 죽음에 바친 것은 병장기의 날카로운 부딪침, 나귀의 우짖는 소리, 시끄러운 마차 바퀴의 소음마저 죽여버린 오로지 거대할 뿐인 침묵이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도착한 카이사르는 침묵으로 자신의 왕을 살해한 자마의 주민들을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전과 같이 이전과 같은 평온함을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전령이 함께 가져온 소식에 의하면 아직까지 우티카에서는 유바에게 찬동하여 카이사르에게 칼을 겨눈 죄로 처형당한 사람이 아직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령은 마지막 소식을 내게 전했습니다. 카이사르가 이 우티카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령의 말에 따르면 그는 누마디아의 여러 도시들을 굴복시키며 행군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마 이튿날에는 우티카의 성벽 꼭대기에서 보이는 곳에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하였습니다.
 탑수스의 전투 후, 카이사르에게 누마디아는 동맹국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적국 조차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누마니아는 점령국일 뿐입니다. 그의 앞을 투창과 칼로 막아서는 자는 더 이상 이 땅에 없고, 오직 앞으로 내민 두 손만이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 모두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직 그의 발길이 닫지 않은 곳들의 주민들 역시 카이사르는 용서할 것입니다. 그가 자신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유명한 관용으로 말입니다.


 바로 얼마 전. 우티카의 유지(有志)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예의를 갖춘 방문이었습니다만, 그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저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티카의 시민들은 카이사르의 군단병을 맞아 싸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에스파냐가 어떠냐고. 그곳이라면 카나리아 제도로 도망친 섹스투스나 탑수스 회전에서 살아남아 아프리카로 도망친 라비에누스와도 합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 속에서 저는 그들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바를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퇴거 요청을 한 것입니다.

 전, 그 무언의 요구를 짐짓 모르는 척하고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망설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늦든 이르든, 카이사르와 그의 군단병들은 끝내 이 우티카에까지 들이닥칠 것이고, 우티카의 주민들 역시 자마나 다른 도시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카이사르에게 무기 대신 공손히 양 손을 앞으로 내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그와 맞서 싸울 아무런 방법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창칼을 들고 일어나 카이사르의 군단병을 막아 설 사람은 이제 우티카에는 저 말고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로마에서 그러했듯이 포로 로마노의 연단 위에서 구름처럼 주위를 에워싼 시민들을 향해 공화정의 수호를 호소할 수도 없습니다. 이곳은 로마 시민들로 가득 찬 로마도 아닐 뿐더러, 로마 주민과 동등한 자격을 가진 동맹국의 주민들조차 아닙니다. 단지 카이사르의 관용을 구걸하는 점령지의 노예들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게는 아무런 방법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우티카를 버리고 섹스투스나 라비에누스가 도망친 에스파냐로 떠날 마음도 들지 않습니다. 이제 카이사르가 광대한 로마 제국을 실제로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은 상식을 가진 로마 시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그런 카이사르를 막을 최후의 수단은 얼마 전 탑수스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의 독제를 막을 수 없게 된 세상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구차한 목숨만 얼마간 부지할 수 있을 뿐이겠지요. 공화정의 수호나 국가의 질서 회복을 위해서라면 모를까.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일에 끝까지 메달리는 일을 저는 더 이상 계속해나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도망칠 수도, 싸울 수도 없는 몸이 되어 카이사르의 앞에 두 손을 내밀고 그의 관용을 구걸하는 짓 따위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엎드리면, 아니.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분명 카이사르는 나를 용서할 것입니다. 내가 살아서 그에게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거나, 원로원 의원인 나를 죽이는 게 국내의 여론 악화로 이어질까를 두려워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관용이기 때문이지요.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은 그러했다는 듯이, 자신에게 끝끝내 칼을 겨누지만 않는다면, 한 때 그에게 칼을 겨누었다는 것조차 없었던 일로 해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카이사르의 관용"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나는 절대로 그의 관용의 대상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그의 관용이라는 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역겨운 짓거리인지!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로마 시민들로 이루어진 군단병들을 이끌고, 마찬가지로 로마 시민으로 이루어진 군단병과 싸웠습니다. 그가 그의 것을 가지고 외적과 싸웠습니까!? 그의 휘하에 있는 군단병들은 절대로 그의 사유물이 아니며 그가 관용을 배푼 상대 또한 그의 오만에 가득 찬 관용 따위를 받지 않아도 여전히 자유로운 로마 시민들입니다! 
 만약 로마 시민이 같은 로마 시민에게 관용을 배푼다고 하더라도 그 관용은 절대로 카이사르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관용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승리를 일구어낸 군단병들과, 그들이 직접 뽑은 민회. 그리고 원로원으로 대표대는 위대한 공화정 로마만이 행사할 수 있는데도! 그것을 지금 카이사르는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양 당당하게 행사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결단코 카이사르는 관용을 행사할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유바는 죽음을 택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나는 그가 굳게 닫힌 성문과 침묵에 쌓인 성벽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선택이 비참한 죽음을 피하기 위한 도피라거나 자신을 배신한 국민에게 절망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카이사르에게 목숨을 구걸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점령국의 옛 왕으로 남는 대신 죽음으로써 영원히 로마의 동맹국인 누마디아의 왕으로 남는 것을 택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자유로운 인간입니다. 모든 사람들처럼 그가 절대로 줄 수 없는 오만한 관용를 받고서,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노예의 무리에 끼일 생각은 없습니다.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스스로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패배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노예의 삶일 뿐이니까요. 저는 비록 카이사르에게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에게 나를 용서하는 것으로 나를 노예로 만드는 영광을 안겨 줄 생각은 없습니다. 그가 널리 알리길 좋아하는 그 관용의 정신도 죽은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바와 마찬가지로 저 또한 자결을 택함으로써 관용의 노예가 아닌 오만함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남을까 합니다.

  이윽고 밤이 깊었습니다. 이윽고 내 결심을 실행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지금 제 앞에는 파이든이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둔 소크라테스는 아마도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포에 지배되지 않는 확고한 죽음에 대한 신념. 그가 말한 대로 자유로움이 인간의 가장 큰 가치관이라면 자유롭기 위한 선택으로써의 죽음 또한 받아들여질 수 이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아쉬움이라면 내 죽음이 오만한 카이사르와 그의 부하들에게 편협한 질투와 절망에서의 자포자기로 인한 죽음으로 난도질되는 것이 두려울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에게 이 편지를 남깁니다. 간직해 주십시오. 만약 그들이 나의 죽음을 편협하다 여기지 않는다면, 죽음을 앞둔 나의 생각은 당신 혼자만 간직해 주십시오.
 하지만, 만약 그들이 나의 죽음을 편협함과 절망으로 인한 죽음이라고 몰아세울 경우엔, 나를 알고 있는 당신이 로마 시민들과 세상에 모든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내가 죽음을 택한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그것만은 죽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이것이 모든 것에서 동지였지만, 살아남는 것을 택한 당신에게 남기는 마지막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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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우티카에서 출발한 카토의 편지가 키케로에게 전해졌는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써는 알 수가 없다. 이튿날 우티카에 입성한 카이사르에게 복종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우티카의 유지들은 카이사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카토가 쓴 편지를 숨겨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불태우지는 않았지만, 카이사르가 우티카를 떠난 이후에 누군가가 편지를 키케로에게 보내주었다는 자료도 남아있지 않으며, 키케로 역시 편지 내용에서 언급된 카토의 말 때문인지 그의 편지에 관해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키케로나 카이사르가 카토의 마지막 편지를 읽었는지 알지 못한다.  오직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 후 키케로가 그의 이름을 딴 책인 "카토"를 집필했으며, 그리고 그에 맞서 카이사르가 "안티 카토"를 썼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 두 권의 책은 중세를 거치는 동안 소실되었다. 만약 그 두 권의 책이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과연 키케로와 카이사르는 카토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었을까." 하는 내 소박한 의문에 해답을 줄 수도 있을지 모를텐데...




 




 *-*-*-*-*


 이 다음에 또 이런 이야기를 쓸 마음이 생긴다면 그 때는 루비콘 강을 건너는 라비에누스와 카이사르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 "마음 먹는" 시기라는 게 영구 미정인 것이다.

by 슈리아 | 2006/11/06 10:49 | 잡스러운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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